회사가 AI를 인사 명부에 적은 날
글의 핵심 개념을 형상화했습니다.
점심도 안 나오는 직원, 여섯 명
KB손해보험에 새 직원이 여섯 명 들어갔다. 점심도 안 나오고 출장비도 청구하지 않고 휴일에는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다. 하는 일은 자동차 사고 과실 비율을 분석하고 민원을 요약하는 일로, 한 사람의 월 업무량 이상을 떠맡았다. 회사 측은 이 AI 에이전트 여섯 종에게 사원번호를 부여하고 직원처럼 직무를 배정해 접근 권한과 수행 이력을 관리하고 있다. 다음 단계로 성과 기반 등급 부여까지 검토 중이라고 하며 에이전트가 안정적으로 일하도록 AI향 데이터 관리체계도 함께 세우고 있다.
이 뉴스를 읽고 든 첫 생각이 ‘놀랍다’가 아니라 ‘재미있다’였다. 회사 안의 가장 진보한 기술이, 회사 안의 가장 오래된 입사 절차로 온보딩되고 있는 것이다. 신입의 숙련도는 회사에서 최고인데, 온보딩 양식은 인사팀이 지난 백 년간 써 온 그 종이었던 셈이다.
이것은 한 보험사의 취미가 아니다. 삼성생명은 보험 전문 언어모델과 디지털 휴먼을 결합한 상담 훈련 서비스를 출시해, 가상고객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상담이 끝나면 개인별 피드백을 주는 구조로 정식 출시 단계에 들어갔다. 삼성화재와 DB손해보험, 한화생명과 신한라이프, NH농협생명까지 가입 설계와 인수심사, 보상 같은 핵심 업무로 AI를 밀어 넣고 있다. 전자상거래에서는 카페24가 에이전트가 밤새 상품 후기와 고객 문의를 모아 분석하고, 아침에 담당자에게 정돈된 보고서를 보낸다는 운영을 검토하고 있다. 마치 퇴근하지 않는 정직원이 백오피스에 배정된 그림이다.
더 단단한 증거는 반도체 현장에 있다. 중국 엠피리언 테크놀로지는 칩 설계에 AI 에이전트를 잇는 전자설계자동화 플랫폼을 공개했고, 회로 배치와 배선, 시뮬레이션 기간을 4주에서 1주로, 75% 줄였다고 발표했다. 과거에는 베테랑 엔지니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일을, 이제 에이전트가 자율 수행하는 단계다. ‘에이전트가 실무를 한다’는 선은 이미 챗봇을 지나 보험과 상거래, 칩 설계 현장에까지 넘었다.
가장 진보된 신입, 가장 오래된 온보딩
여기서 역설이 시작된다. 에이전트가 실무를 하는 순간, 기업은 하나를 풀어야 한다. 이것은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거버넌스의 네 가지 물음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기업들이 이 물음에 새 시스템을 발명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미 있는 것을 꺼냈습니다. 회사가 백 년째 돌려 온 인사제도입니다.
인사제도의 항목을 에이전트 쪽의 네 물음과 나란히置いて 보면 됩니다. 사원번호는 ‘누구인지’를 답합니다. 에이전트의 신원입니다. 직위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입니다. 권한의 범위입니다. 성과평가는 ‘무엇을 했고 어땠는지’입니다. 감사입니다. 내부감사와 사전 승인제는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입니다. 정책 게이트입니다.
한컴이 이번에 공개한 AI 워크포스 플랫폼 노마디안은 같은 뼈대를 지니고 있습니다. 에이전트를 직원처럼 채용해 팀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플랫폼으로, 세계 첫 출시를 내세우며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섭니다. 주목할 내장 기능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메일 발송이나 전자서명처럼 되돌릴 수 없는 작업을 실행하기 전 사람의 승인 게이트를 두는 것입니다. 둘째, 승인되지 않은 도구로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이를 인사 언어로 번역하면 정확히 ‘고위험 업무의 별도 승인’과 ‘직위별 접근 관리’입니다. 소프트웨어 회사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에이전트를 관리하려면, 먼저 인사 명부가 필요합니다.
회사가 ‘AI 동료’를 향해 간 이유
이는 ‘돈을 아끼고 싶어서’만은 아닙니다. 골드만삭스 조사에서 미국 소기업의 76퍼센트는 AI를 쓰고 있지만, 핵심 업무에 완전하게 활용한다는 응답은 14퍼센트에 그쳤습니다. 장벽은 도구 선택의 어려움이 48퍼센트, 기술 인력 부족이 49퍼센트였습니다. 미국 신규 스타트업의 1인 창업 비중은 2019년 23.7퍼센트에서 2025년 상반기 36.3퍼센트로 뛰었습니다.
이것을 이어 읽으면 됩니다. AI가 필요한 조직은 작고 그것을 만들 조직은 적은 것입니다. 에이전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 인력은, 에이전트를 쓰고 싶은 회사보다 더 드뭅니다. 이 틈에서 ‘채용할 수 있는 에이전트’는 선택지가 아니라 대체재입니다. 한컴은 직원이 없는 미국 사업체 3,040만 곳을 첫 시장으로 정했는데, 바로 이 틈을 겨냥한 것입니다.
이때 사원번호의 논리가 더 선명해집니다. 채용한 것을 쓰지 않습니다. 관리합니다. 회사가 에이전트를 동료로 보기 시작한 순간, 거버넌스는 옵션이 아니라 온보딩의 전제가 됩니다.
사원번호는 이름이 아니라 신원입니다
사원번호가 왜 먼저 등장하는지 생각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인사에서 사원번호는 이름을 대신해 존재 자체를 시스템이 아는 방법입니다. 이름은 부르기 위한 것이라면, 사원번호는 시스템이 그 사람을 식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에이전트에 사원번호를 부여한다는 것은, 결국 그 에이전트를 시스템이 식별할 수 있는 존재로 등록한다는 선언입니다.
KB손해보험이 에이전트 여섯 종에 사원번호를 매기면서 직무와 권한, 수행 이력까지 함께 관리하겠다고 한 것은, 이 등록을 하나의 이름에 그치지 않고 신원 관리의 전체로 확장했음을 뜻합니다. 누가, 어떤 직위에서, 어떤 권한으로, 어떤 일을 했고 그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사람의 인사관리와 같은 구조입니다. 다만 사람의 인사기록이 연간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것과 달리, 에이전트의 수행 기록은 초 단위로 쌓입니다. 같은 사원번호라도, 사람의 그것을 관리할 때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촘촘하게 굴어야 하는 장부가 됩니다.
여기서 인사제도가 에이전트에 그대로 맞는지라는 물음이 생깁니다. 사람의 온보딩은 한 번의 사건입니다. 서류를 받고 직위를 정하고 권한을 부여하고 끝입니다. 에이전트의 온보딩은 사건이 아니라 상태입니다. 권한은 상황마다 달라야 하고 승인은 매 실행마다 필요할 수 있으며 감사는 끊임없이 흘러야 합니다. 백 년간 사람을 위해 만든 제도가, 기계 속도의 존재를 다루려면 다른 박동으로 다시 뛰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명부 없는 조직, 82퍼센트
이 박동의 문제를 방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미 숫자로 나와 있습니다.
클라우드보안연합의 조사에서, 조직이 파악하지 못한 AI 에이전트가 내부에 존재한다는 답이 82퍼센트에 달했습니다. 사원번호가 없으면 담당자도 없습니다. 몇 명인지, 무엇을 하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모릅니다. 최근 1년 내 AI 에이전트 관련 보안 사고를 겪었다는 답은 65퍼센트였으며, 사고 기업 중 61퍼센트는 데이터 노출을 경험했습니다. 에이전트의 권한이 클수록, 피해는 그 권한 범위를 따라 빨리 퍼집니다.
이 틈의 핵심은, 에이전트는 빠르게 도입되고 명부는 느리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쓰고 나중에 정리하는 속도가 거버넌스를 만드는 속도를 앞지를 때, 82퍼센트는 그 격차를 재는 눈금입니다.
규제도 같은 인사 언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만드는 AI 보안 안내서 v2.0은 권한과 접근 범위 제한, 판단과 행동 기록, 고위험 동작의 별도 승인을 요구합니다. 과기정통부가 행정예고한 사이버보안 기본지침은 AI 시스템 구축과 운영 시 별도 보안대책 수립을 의무화하고, AI 활용 사업을 보안성 검토 대상에 새로 넣었습니다. 신원, 권한, 감사, 승인. 규제도 새 말을 발명하지 않는 것입니다.
소비자 기기 쪽에서도 같은 얘기가 증명됩니다. 애플은 2027 소프트웨어와 함께 차세대 비서 시리 AI를 정식 출시했습니다. 개인 맥락을 이해하고 화면을 읽고 앱을 가로질러 동작을 실행합니다. 구조는 온디바이스 처리와 연산 중 사용자 정보를 저장하지 않는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트를 결합한 것입니다. 10월에는 한국어를 지원합니다. 즉, 맥락을 이해하고 도구를 호출해 동작을 실행하는 에이전트가, 주류 운영체제의 표준으로 내장된 것입니다. 소비자 기기에도 이 정도가 기본이라면, 기업이 맞춰야 할 기준은 더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에이전트 일의 가격이 매겨지는 중
명부가 신원과 권한, 감사를 다룬다면, 한 가지 더 남은 항목이 있습니다. 급여입니다.
중국 엠피리언은 에이전트를 칩 설계에 쓰면서 수년간의 고정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대신 토큰 소비 기반 종량제 과금으로 바꾼다고 예고했습니다. 에이전트가 일한 만큼, 그 일의 토큰만큼 내는 구조입니다. 카페24는 220여 개 AI 모델을 하나의 API에서 골라 쓰고, 모델별 요청량과 토큰 사용량, 비용을 한곳에 모아 관리하는 라우터로 이 일을 돌립니다. 애플조차 시리 AI의 서버 기반 모델 사용에 일일 한도를 두고, 초과분은 앞으로 유료로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세 회사는 서로 다른 산업에 있지만 같은 문장을 쓰고 있습니다. 에이전트 일은 이제 몇 시간의 인력이 아니라 몇 토큰의 실행으로 계상됩니다. 명부에 급여란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급여가 직급과 연공으로 정해졌다면, 에이전트의 급여는 작업마다 선택하는 모델과, 그 실행이 드는 토큰으로 정해집니다. 명부의 마지막 칸까지, 인사가 에이전트 쪽으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시스템이 된 인사 명부
오늘 뉴스를 한 줄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에이전트가 실무를 하기 시작하자, 기업은 회사 안의 가장 오래된 장부, 인사 명부에 손을 뻗었습니다.
그것은 임시방편이 아닙니다. 사원번호는 응급조치가 아니라 증세입니다. 신원과 권한, 감사, 승인 게이트, 그리고 비용에 아직 자기 말이 없었던 요구가, 인사제도라는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 겁니다. 다만 인사 명부는 사람의 장부라서, 기계 규모의 에이전트를 종いと 스프레드시트로 하나씩 관리하기는 어렵습니다.
정식 제품인 Paxis가 제공하는 에이전트 네이티브 클라우드는, 바로 이 인사 명부가 시스템화된 버전입니다. Paxis에서는 스킬, 도구, 정책, 감사 로그가 부속 기능이 아니라 일급 자원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건드릴 수 있는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무엇을 했는지가 구조화되어 관리된다는 뜻입니다. 자율도는 L0에서 L3까지 단계별로 거버넌스되고 모든 실행은 정책 게이트를 거쳐 감사 로그로 남습니다. 실행은 격리된 샌드박스 안에서 이루어지고 작업마다 모델 선택을 하는 CostRouter가 에이전트 일의 비용을 다룹니다. 소버린 또는 온프레미스 K8s 배포는 데이터가 국외로 나가지 말라는 요구에도 답합니다.
뉴스의 언어로 다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KB손해보험이 에이전트에 준 것은 사원번호와, 등급을 받을 자격이었습니다. 노마디안이 내장한 것은 승인과 접근 차단이었습니다. Paxis는 그 사원번호와 직위, 권한, 성과, 내부감사, 그리고 급여가 모두 일급 자원인 인프라입니다. 가장 진보된 신입이, 결국 가장 체계적인 온보딩을 받는 날입니다.
기억해 둘 한 줄
새 존재가 회사에 들어올 때의 질문은 얼마나 똑똑하느냐가 아니라, 명부가 있느냐입니다. 사원번호는 그 명부의 시작이었습니다. 명부가 시스템이 되는 날, 에이전트 도입이 진짜 운영이 됩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아래 뉴스를 종합해 작성했습니다.
- 디지털데일리, “이제야 약속 지킨다”…애플, 차세대 인텔리전스 결합한 ‘시리 AI’ 정식 출시
- 서울경제, 한컴, 세계 첫 AI 워크포스 플랫폼 ‘노마디안’ 출시…美 시장 공략
- 뉴스1, “셀러 백오피스 반복업무 AI가 해결”…e커머스, 에이전트 도입 속도전
- 글로벌이코노믹, “칩 설계 기간 1/4로 단축”… 中, ‘AI 에이전트 EDA’로 美 시놉시스 독점 공세
- 뉴스1, 상담 연습하고 보험금도 심사…보험사 핵심 업무 파고든 AI
- 디지털투데이, 과기정통부, ‘사이버보안 체계’ 전면 개편…AI·클라우드·우주까지 확대
- 서울경제, 해킹하는 AI vs 막아내는 AI…차세대 보안 ‘창과 방패’ 경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