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생 한 장, 벤치마크 한 줄: 오늘 국내 AI는 증명서의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개념을 형상화한 이미지 글의 핵심 개념을 형상화했습니다.

같은 날 두 장의 종이가 흔들렸습니다

한 장은 직접생산확인증명서입니다. 이 종이만 있으면 나라장터에 국산 서버 업체로 등록됩니다. 디지털데일리 서버주권 기획에 따르면 그렇게 등록된 업체가 약 260곳입니다. 다른 한 장은 벤치마크 점수표입니다. 아이뉴스24 단독 보도를 보면 과기정통부가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3차 평가의 채점 방식을 손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2차 평가에서 벤치마크가 100점 중 40점을 차지했는데, 그 점수를 올려주겠다는 제안이 참여사들에게 접촉해 왔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두 사건은 산업도 다르고 담당 부처도 다릅니다. 그런데 실패하는 방식이 똑같습니다. 한 시점에 발급된 증명이 그 이후의 실체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뉴스를 이 렌즈로 다시 읽으면, 흩어져 보이던 기사들이 한 줄로 꿰입니다.

종이는 조립 이후를 보지 못합니다

서버 쪽 구조가 특히 노골적입니다. 해외에서 베어본 서버를 들여와 국내에서 CPU와 메모리만 꽂아도 국산으로 인정받습니다. 어떤 업체는 메인보드를 자체 설계한다며 전 세계 20개사만 가능한 역량이라고 강조하지만, 경쟁사들은 핵심 부품이 같아서 기술 차이가 거의 없다고 반박합니다. 실제로 SPECjbb 같은 표준 벤치마크에서는 국산과 외산의 성능 차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더 뼈아픈 숫자는 그다음입니다. 연 3조원 규모의 공공 서버 예산 중 국산 우대 조달로 흘러가는 비중은 1~2%에 그치고, 나머지 98%는 시스템통합 번들 계약을 타고 외산 벤더가 기본값이 됩니다. 증명서를 발급하는 제도는 촘촘한데, 정작 예산의 대부분은 그 제도를 지나쳐 갑니다. 주권을 서류로 정의하면 서류만 늘어난다는 사실을 이 기획이 숫자로 보여줍니다.

오해를 피하고 싶습니다. 국내에서 조립하는 일이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공급망 위기가 닥쳤을 때 국내에 조립 라인과 유지보수 인력이 남아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자산입니다. 문제는 그 가치와 설계 역량의 가치가 같은 종이 한 장으로 표시된다는 데 있습니다. 구분되지 않는 표시는 정보를 주지 못하고, 정보를 주지 못하는 표시는 조달 담당자에게 무시당합니다. 98%라는 숫자가 그 무시의 크기입니다.

점수는 한 번 찍히고 모델은 계속 바뀝니다

벤치맥싱 논란은 같은 병의 다른 증상입니다. 류제명 2차관은 과적합이나 암기 방식을 입증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부정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제도가 흔들리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참여사들이 공통적으로 벤치마크 비중을 줄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점수를 신뢰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점수가 측정하려던 것을 더 이상 대표하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3차 평가에 오른 곳은 LG AI연구원과 SK텔레콤, 업스테이지 세 곳이고, 통과하면 팀당 엔비디아 B200 GPU를 약 1000장, 금액으로 1200억원 규모까지 지원받습니다. 별도로 진행되는 모두의 AI 사업에서도 선정 사업자에게 B200을 최대 512장 배정합니다. 채점 한 줄이 1000억원대 자원 배분을 가릅니다. 이 정도 무게가 실리면 어떤 지표든 최적화의 표적이 됩니다. 지표가 목표가 되는 순간 지표이기를 그만둔다는 오래된 경고가, 국가 예산 규모에서 재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점수를 버리자는 결론으로 건너뛰면 곤란합니다. 벤치마크가 없으면 심사는 발표 자료의 설득력 싸움이 되고, 그쪽이 조작하기 훨씬 쉽습니다. 3차에 오른 세 곳만 봐도 강점이 제각각입니다. 업스테이지는 100만 토큰 장문 처리를, SK텔레콤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금메달 수준의 추론을, LG AI연구원은 7500억 파라미터 초대형 모델을 내세웁니다. 이렇게 축이 다른 후보를 비교하려면 공통 눈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진짜 처방은 점수를 없애는 쪽이 아니라, 점수가 찍힌 뒤에도 관찰이 이어지게 만드는 쪽입니다. 선정된 팀이 GPU를 받아 무엇을 얼마나 돌렸고 사용자가 어떻게 썼는지가 계속 기록된다면, 한 번의 채점이 지는 부담이 그만큼 가벼워집니다.

식약처는 이 문제를 먼저 꺼냈습니다

흥미롭게도 오늘 가장 앞서 나간 답은 AI 업계가 아니라 규제 당국에서 나왔습니다. 식약처 손미정 과장은 고정형 기계학습 모델을 전제로 만든 지금의 규제로는 생성형과 지속학습형, 에이전트형 AI 의료기기를 다루기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재설계 축으로는 데이터 활용, 지속학습 대응, 신뢰성과 책임소재 확보 세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이 진단의 핵심은 인허가 시점과 실사용 시점이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계속 학습하는 시스템은 승인받은 그 모델로 오래 머무르지 않습니다. AI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디지털의료기기 허가 건수가 작년 약 500건에서 올해 말 700~800건까지 늘어날 전망이라는데, 심사 건수를 늘리는 방식으로는 따라잡히지 않는 문제입니다. 결국 한 번의 인증이 아니라 전주기 관찰로 넘어가야 한다는 결론에 닿습니다. 서버 조달과 모델 평가가 마주한 곤경도 정확히 같은 지점에 있습니다.

같은 날 공개된 모두의 AI 사업 구도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공모에는 SKT와 카카오, KT를 비롯해 6개 사업자와 컨소시엄이 들어왔고, SKT는 풀스택, 카카오는 생활 접점, KT는 멀티 LLM으로 축을 나눴습니다. 참여 요건이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기준에 맞는 국산 모델 50% 이상, 타사 국산 모델 30% 이상 활용이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 9월 말 베타를 거쳐 12월 본서비스가 예정돼 있으니, 이 사업은 심사장이 아니라 실사용 현장에서 판가름 납니다. 국내 AI 조달이 서류 심사에서 운영 실적으로 무게를 옮기는 흐름이 이미 시작된 셈입니다.

증명이 실행 기록으로 내려온 흔적들

그렇다면 증명서를 대신할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나머지 기사들이 힌트를 흘립니다. 공통점은 문서가 아니라 실행 로그가 근거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SK에코플랜트에서는 현장 실무자가 바이브 코딩 방식으로 1600페이지짜리 지반조사 보고서를 자동 요약하고 3D로 시각화하는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회사는 AI 수용, 역량 인증, 에이전트 개발과 서비스화로 이어지는 3단계 체계를 운영하고 약 200명이 인증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여기서 도구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도입 보고서가 아니라 그 에이전트가 실제로 처리한 보고서 더미입니다.

보안 쪽은 더 노골적입니다. 스윔레인은 알림을 결정론적 자동화, AI 보조 조사, 완전 에이전틱 조사 세 경로로 자동 분류하는 기능을 내놓았습니다. 한 헬스케어 고객사는 하루 180건 넘는 위협 중 상위 10%에만 에이전틱 조사를 투입해 비용을 90% 줄였습니다. 코디 코넬 CEO는 수십만 건 규모에서 건당 5~10달러 토큰 비용은 감당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어떤 알림에 얼마를 썼는지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절감이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 됩니다.

KHF 2026 전시장의 풍경도 같은 방향입니다. 흉부 엑스레이 예비 소견서를 자동 생성하는 판독 지원 서비스가 나왔고, 디지털 병리 뷰어는 서울성모병원 적용 뒤 7개 병원으로 확산을 앞두고 있으며, 약품과 검체를 나르는 자율주행 로봇까지 전시됐습니다. 소프트웨어를 넘어 물리 세계로 넘어가는 순간, 식약처가 지적한 책임소재 문제는 서류가 아니라 그날 그 로봇이 무엇을 했는지의 기록으로만 풀립니다. 낙상 감지 카메라가 경보를 울리지 않은 밤이 있었다면, 답은 인증서 사본이 아니라 그 시각의 판단 로그에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원가는 논쟁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로이터 보도를 인용한 소식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4나노와 5나노 신규 주문 가격을 10~15% 올렸고, HBM 쏠림으로 구형 D램 가격은 50% 뛴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평가 기준을 다듬는 동안에도 인프라 청구서는 매달 도착합니다. 이 대목이 앞의 논의와 무관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원가가 오를수록 조직은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설명할 근거를 요구하게 되고, 그 근거는 결국 실행 단위로 남은 기록에서 나옵니다. 비싸질수록 감사 가능성이 미덕이 아니라 필수가 됩니다.

증명서 대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정리하면 오늘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한 번 발급하면 끝나는 증명을, 계속 쌓이는 증거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

ThakiCloud가 Paxis를 만들 때 붙든 전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Paxis는 Agent Native Cloud이고, 정식 제품으로 v1.1 GA 단계에 있습니다. 이 제품에서 Skills와 Tools, Policies, Audit Logs는 부가 기능이 아니라 일급 리소스입니다. 에이전트가 어떤 스킬로 어떤 도구를 호출했고 어떤 정책 게이트를 통과했는지가 실행할 때마다 기록으로 남습니다. 자율도는 L0에서 L3까지 단계로 관리하므로, 위험한 작업일수록 사람의 승인을 통과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실행은 격리된 샌드박스에서 이뤄지고, 소버린 요구가 강한 곳에서는 온프렘 쿠버네티스 위에 그대로 올릴 수 있습니다. 작업별로 모델을 고르는 경로도 있어서, 스윔레인이 보여준 상위 10%만 비싸게 처리하는 구조를 조직 업무 전반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MCP 커넥터와 스킬 마켓을 통해 현업이 자기 업무에 맞는 스킬을 직접 조립하는 경로도 열어 뒀는데, SK에코플랜트 사례처럼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 IT 부서에서 현장으로 내려올수록 통제와 기록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집니다. 누가 만들어도 되지만 무엇을 했는지는 남아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클라우데라가 어제 애니웨어 클라우드를 내놓으며 퍼블릭과 온프레미스, 소버린 인프라, 엣지를 한 콘솔로 묶겠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수요를 향합니다. 데이터를 옮기지 않고 있는 자리에서 실행한다는 접근입니다. 경쟁자가 늘었다는 뜻이자, 기업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장이 합의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증명서는 앞으로도 필요합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이 오늘 두 장의 종이에서 동시에 드러났습니다. 직생 확인서가 조립 공정을 다 설명하지 못하듯, 벤치마크 점수도 모델의 실사용을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남는 것은 실행 기록입니다. 누가 무엇을 어떤 권한으로 실행했는지가 남아 있으면, 그것을 나중에 감사할 수도 있고 다음 평가의 근거로 쓸 수도 있습니다. 내년 초 최종 2개 팀을 가릴 독파모 평가가 사용자 평가 쪽으로 무게를 옮긴다면, 그 방향 역시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키게 될 것입니다.

오늘 뉴스를 덮으며 남는 문장은 하나입니다. 증명은 발급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는 것입니다. 서버든 모델이든 에이전트든, 다음 분기에 신뢰를 얻는 쪽은 더 좋은 서류를 준비한 조직이 아니라 자기가 무엇을 해 왔는지 꺼내 보일 수 있는 조직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준비는 제도가 바뀌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오늘부터 가능합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아래 뉴스를 종합해 작성했습니다.

태그: agentops, 엔터프라이즈 AI, paxis, thakicloud

카테고리:

업데이트: